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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킴스하우스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교수님께 쓴 글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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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장 열심히 살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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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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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벌써 2020년도 막바지에 다다르네요. 코로나로 뒤숭숭한 한 해였지만 그럼에도 교수님의 시간이 평안하고 편안하셨기를 바라요.

얼마 전에 들러서 글을 쓰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작년 수능을 칠 때니까 벌써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그 1년을 저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전세계가 그러하겠지만 당연하게도 저희 또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대학교를 간 건지 아직도 분간이 안 되고 실감이 안 나기도 하네요. 아,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갔어요. 딱히 가고 싶던 학교도 없었어서 합격을 하고도 맹숭맹숭했지만... 나름의 위안이라면 이름을 대면 많이들 아는 학교에 진학했다는 거예요. 그래도 최근에는 서울에 가서 살고 있고, 알바도 하고 있어요. 처음 해 보는 일인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놀라는 중이에요. 물론 조금 더 하고 나면 금세 출근하기 싫다고 미적거릴 테지만요.

킴스하우스는 제게 조금 특별해요. 뭐랄까... 평소에는 다른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이곳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잊고 살지만, 한 번씩 이곳에서의 기억이 굉장히 큰 용기가 되어요.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 갇혀서 틀에 박힌 시간대로 살아야 할 때, 저는 더 어리고 더 작았을 때도 더 열심히 잘 지냈지 않냐며 자위했어요. 다시 말하자면 킴스하우스에 있었을 때 정말 힘들었단 소리기도 한데... 그래도 참 희한한 게 자꾸 생각이 난다는 거예요. 킴스하우스 말고 다른 연수를 갔던 건 그랬었지, 정도뿐인데 유독 여기만 진하게 기억에 남네요. 그래서 간간이 들르게 되고, 어쩌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혼자 사색에 잠기기도 한답니다. 이 게시판에 제가 아는 이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바로 아래 게시글에 있는 샘도 그 중 하나죠.

성인이 되고 나면 꼭 한 번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었어요. 20년이 되자마자 코로나가 이렇게 터질 줄은 누가 알았겠냐만은... 공부하고 있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제가 공부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도 좋고, 그러면서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그 새로울 느낌도 받고 싶었거든요. 아무리 빨라도 올해는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기회가 오면 좋겠어요. 그리고 8년이 더 지나서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지도 궁금하고요. 교수님은 그때도 한참 어른이셨는데, 지금은 더 나이가 많아지셨겠죠? 한참 아기같던 데니얼도 어엿한 청년이 되어 갔을까요? 대만에 계신다고 읽었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실지도 몹시 궁금하네요.


서론은 이만하면 됐고, 조금 더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올 한 해는 제가 가장 나태하게 산 일 년일 거예요. 물론 대학생이라는 신분도 그에 한 몫을 했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저는 올해만큼 게으르게 산 적이 없었어요. 다른 모든 날을 열심히 살아서가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 올해를 그냥 흘려보낸 거랍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은 어찌 안 들었겠냐만은 그래도 현실에 안주하고 안온하게 지내는 데 익숙해져 버려서 바꾸기 쉽지 않더라고요. 실제로 수능이 끝나면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걸 이루기는커녕 제대로 하자고 마음 먹지도 못했어요. 수능이 끝난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산다지만... 조금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저는 한국에 돌아오고 킴스하우스에 있을 때처럼 열심히 지낸 적이 없답니다. 물론 당연히 그때보다 열심히 산 적도 없겠죠. 그래서 저는 그때를 내 가장 열심히 살던 날들이라고 말할 수 있음에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 부끄럽답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쉽게 못 하는 말이죠. 그래도 말할 곳이 없어서 여기에 말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한 번 써 보아요.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열심히 달린 이후에는 잘 쉬고 다시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던데, 저는 한 번 열심히 달리고 나니 그 뒤로는 안 그래도 되겠다고 선을 그어 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바로 이룬 것 하나 없게 됐고요. 스무 살이 뭐 위대한 걸 이룬 게 더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들 잘하는 거 하나쯤은 있잖아요. 저는 대개 처음에는 잘하다가 어느 순간 정체기를 만나면 거기서 놓게 되더라고요. 영어도 그랬고, 다른 것들도 그랬어요, 운동이나 악기나 뭐든요. 그걸 끌고 갈 의지가 없는 거겠죠. 그래서 조금 방황도 하고 혼자 궁상이나 떨기도 하다가...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하루들을 살았을 거예요. 어중간하게 시작해서 중간에 관둔 무언가들만 쌓였죠.

그래서 간혹 바라기도 했어요. 정말로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게 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아쉽게도 그런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더라고요. 지금까지도요. 실제로 생활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잘하는 아이들, 재능 넘치는 아이들은 숱하게 쏟아졌고, 저는 그런 걸 보고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단념하고 포기하더라고요. 쟤네가 더 잘할 건데 뭐하러 열심히 해, 하고 스스로 한계를 정한 채로. 그걸 동기로 더 노력해서 잘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죠. 그 결과야 뭐... 말하지 않아도 뻔하고. 그나마 좋아하는 거라곤 글을 쓰는 건데, 그것도 막상 아주 할 수 있게 되니 잘 하지 않는 모습에 조금 지치기도 해요.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요? 아니면 저의 용기없음을 탓해야 할까요?

그때는 맞을 매가 무서워서 쫓기듯이 바쁘게 산 것도 있지만, 그래도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 뒤돌아봤을 때 그렇게 감명 깊다면 다시 그런 날이 오길 바라는 시간이 많아져요. 그때는 정말... 정말정말, 지독하게도 싫어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때를 제가 가장 열심히 산 날이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지 못했단 것 또한 지금 와서 고백합니다. ㅋㅋㅋㅋㅋ 부끄럽네요. 뒤로 갈수록 그 체계에 익숙해지고 피할 방법만 늘어서 조금 더디고 늘었던 것도 있네요. 그리고 웃기게도 그때의 영어실력으로 전 수능까지 봤답니다. 한 번 잃은 흥미는 잘 붙지 않더라고요. 억지로 부여잡고 하려니 그때만 잠시뿐이고 그 뒤로는 진전도 발전도 없었어요. 이건 좀... 아쉬움이 큰데, 돌아간다고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판단 내리기 어렵네요.

이걸 쓰기 전에 몇몇 애들 글을 둘러봤어요. 어쩌다보니 2015년 것까지 보게 되었는데... 아는 애들, 익숙한 이름이 정말로 많더라고요.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보니까 기억이 새록새록한 게 참 신기해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외국에 나가 있네요. 해외에서 공부하고 영어를 기반으로 사는 생활이 어떨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덕에 교수님이 아주 클 것 같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도 하네요. 저는 줄곧 한국에서만 살았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외국에 간대도 잠시뿐일 테죠. 물론 교수님은 번번이 한국은 좁다며 해외로 나가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전 한국이 좋아요. 편하고. 누누이 해 주신 말씀을 그렇다고 흘려 들은 건 아니고, 기회가 닿으면 교환학생은 다녀오고 싶어요. 저는 아직은 한국이 좋고, 무엇보다 한국어가 좋아요. 그래서 아직 여기에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답니다. ㅎㅎ


하고 싶던 말은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순형이 소식을 좀 전하자면... 고2가 되었답니다. 2개월이 지나면 고3이 되죠. 놀 거 다 놀고 공부는 끔찍하게도 안 하는데, 덩치만 커져서 징그러워요. 상상이 가시나요? 이제 저보다 키도 훌쩍 커 버려서 가끔 자기 팔을 제게 얹는데 재수없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낙천적이게 잘 살고는 있어요. 순형이는 킴스하우스 이야기 하면 싫다고 진저리 내는데, 딴에는 힘들었나 봅니다. 사실 거기서 안 힘들었던 사람은....... 없죠.

위에 가입일이 뜨는데, 2839일이네요. 까마득한 날들이에요 정말. 그런데도 그 시간들이 기억나고, 교수님의 애정과 이모의 다정함과 같이 어울려 놀던 언니랑 데니얼 생각이 드문드문 드는 걸 보면 그때가 조금 그립긴 한가 봐요. 어쨌든 길다면 긴 제 푸념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만에 와서 무거운 이야기나 남기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언제 오든 교수님이 길게 코멘트 달아 주셨던데, 그 정성에 늘 감탄하고 가요. 읽는 재미도 있고요. 그럼 몸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들를게요. 잘 지내세요, 이만 말 줄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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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님의 댓글

  •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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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경은아. 오랜만이구나. 얼마 전에 경은이가 킴스하우스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 같은데 벌써 거의 1년이 다 되가는 구나. 그때 경은이가 수능을 치고 나서 글을 올렸었지. 그때 이모랑 같이 글 읽으면서 그 어렸던 경은이가 벌써 대학생이 다 되었구나하고 놀랬었는데, 이제는 곧 대학교 2학년이 되는 구나. 그때 만해도, 1년 후에 코로나라고 하는 대재앙이 전세계를 덮어서 지금과 같은 이런 상황이 될지 누가 알았겠니. 예전에는 맘만 먹으면 갈수 있었던 필리핀이지만,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었구나.

사실 올해는 필리핀에서 정말 일이 많았단다. 작년 12월에, 그러니깐, 겨울 연수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마닐라 인근의 따알 화산이 폭발해서 정말 난리도 아니었지. 연수 중간에 학생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밤새 고심하기도 했었단다. 사실 따알 화산 근처에도 영어캠프 장소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의 경우는 바로 코앞에서 화산이 터졌으니 얼마나 다들 노랬겠니. 다행히 킴스하우스가 있는 퀘존 시는 따알 화산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결국 연수는 잘 마칠 수 있었고, 2월 말에 예정대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단다.

이렇게 화산이 좀 잠잠해 지는 구나 싶었더니, 한국으로 돌아가기 몇 주 전에 중국 우한에서 뭔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그때는 별거 아니려니 생각했는데, 연수가 끝나는 2월 말쯤에는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바이러스가 바뀌더니 하루가 다르게 번지는 거야. 오토바이 피하다가 차사고 났다고, 화산 걱정 좀 잦아들었나 싶더니 더 강력한 코로나 사태를 만난거지.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지난 겨울연수는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단다. 당시 화산재 걱정 때문에 마스크를 많이 사두었는데, 아이들과 인천 들어갈 때 그 마스크를 코로나 때문에 쓰고 들어갔단다.

그 뒤로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놨지. 모든 사람들의 삶이 변하고 피해도 많이 입었고, 지금도 입고 있지만, 교수님 생각에, 그중에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부류가 학생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구나. 어쩌면 올 한해는, 학생들에게 “잊혔진 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그 정도로 모든 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 사실 지금 학교들에서 하고 있는 온라인 교육은 성과가 매우 떨어진단다. 교수님은 벌써 교육 쪽에서 거의 25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잘 알지. 물론 온라인 교육도 나름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은 오프라인 교육이 함께 할 때만 진정한 도움이 되는데 지금처럼 온라인 교육이 모든 교육을 대치하게 된다면 결국 반쪽짜리, 아니 그보다 훨씬 결과가 나쁜 교육 밖에는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말지.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금할 수 없구나.

더 큰 문제는, 코로나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전까지는, 교육 쪽에서의 이 문제가 상당기간 계속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어차피 정부나 학교 쪽에서는 온라인 수업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데, 그래서 학생 쪽에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이 상황을 대처하지 않으면, 정말 우리 인생에서 “잊혀진”, 다시 말해 그냥 시간만 가버린 2020년이 될 것 같구나. 더 걱정은 2021년도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다는 것이지.

경은이의 이야기를 쪽 들어보니, 경은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경은이는 예전에도 좀 그랬던 것 같은데, 교수님 생각에는 환경이 경은이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구나. 사실 너도 기억하겠지만, 그리고 교수님도 기억하고 있지만, 경은이가 처음 킴스하우스에 갈 때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비슷했단다. 그때 경은이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며, 앞으로도 잘 잊지 못할 것 같구나. 반면에 동생 순형이는 멋도 모르는 체 장난만 치고 있었지. 그때 교수님도, 저렇게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필리핀에 가서 어떻게 교육시키나.. 하고 속으로도 좀 걱정이 많이 되었었단다. 물론 그 뒤로 경은이가 보여준 모습은 정말 반전 그 자체였지만 말야.

아마 경은이가 부모님에게 필리핀 안 가겠다고 했다면, 경은이 인생이 지금과는 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그러나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그 상황을 잘 헤쳐 나가는 것은 경은이의 잠재력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한단다. 따라서 지금의 편안 상황 혹은 자기가 원하는 상황에 너무 안주하지 말고, 어쩌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조금 혹독한 상황을 만들 필요도 있지. 예를 들면 "6개월 안에 TOEIC시험에서 고득점 맞기"와 같은 개인적인 목표를 세운다 다면, 목표가 생겼으니 좀더 알차게 지금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되. 경은이 말대로 앞으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는 해냈었고, 이번에도 해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 얼마든지 어려운 일도 잘 해낼 수 있지. 경은이는 그런 능력이 있으니깐 말야.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을 즐기면서 해나 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토익공부도 자신이 즐겁게 하면 더이상 짐으로 느껴지는 공부가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지.

교수님을 생각해봐. 방학 연수가 시작될 때, 그렇게 말 안 듣고, 공부도 안하는 학생들 수십 명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데려왔을 때 얼마나 큰 부담을 느꼈겠니? 이제 몇 달 간, 이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서 “영어, 공부실력, 태도”까지 바로 잡고, 또 사고 나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하게 한 후에 한국으로 데려가야 하는 미션을 받았으니, 얼마나 힘들겠니? 경은이도 그 상황을 잘 알지? 그러나 이 어려운 일들을 그간 나름 잘 수행했던 것은, 교수님이 아이들을 가리치고 지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연수 중간에 미쳐버렸을 지도 몰라 ㅋ.

학생의 입장도 마찬가지지. 같은 교육을 받았지만, 경은이의 킴스하우스에 대한 추억과 순형이의 추억이 다른 이유는, 얼마나 그 환경을 자신이 즐겼냐 혹은 도움이 되었냐에 달려있지 않나 생각해. 경은이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고, 또 나름 그 생활을 즐겼고,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살아가면서 그때 쌓았던 실력과 경험이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면,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도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 그리고 그것에 더해, 좀 더 sentimental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과거의 그런 기억들은 더욱 아련하게 기억되는 것이지. 우린 그것들을 “추억”이라고 부르는 거고.

순형이는 그때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놀기만 했고, 그래서 교수님에게 혼만나고 했으니, 킴스하우스의 교육을 즐기지도 못했고 또 큰 도움도 못 받았으니, 그렇게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킴스하우스에 온 상당수의 학생들이 순형이와 비슷한 생활을 했었고, 그 아이들에게 킴스하우스는 어쩌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지. 그렇지만 또 다른 부류의 학생들은 경은이처럼 열심히 했고, 그로 인해 향상된 실력이 향후에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당연히 이곳의 추억이 말 그대로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거겠지.

물론 또 어떤 아이들은 여기서 열심히 했고 향후에 그렇게 도움도 받았지만, 좀 “무정”해서 이곳의 추억이 추억처럼 생각되지 않는 아이들도 있을 거고. 그런 애덜은 감성이 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 ㅋ. 그래도 어찌되었건, 킴스하우스의 독특한 기억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팁을 주자면, 교수님도 살면서 개인 적으로 느끼는 점이지만, 그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그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지 않는 것이 좋단다. 일례로 예전에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기억나서, 어렵게 찾아가서 그 음식을 다시 먹어보면 열에 아홉은 실망을 하게 돼. 이유는, 음식의 맛이 변한 것은 아니고 우리의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지. 경은이 말대로 경은이가 생활했던 킴스하우스의 그 장소에 혹시 다시 가보게 된다면, “여기가 이렇게 좁았던가? 혹은 여기가 이렇게 낡았던가?” 등등, 당시의 아련한 추억보다는 현실의 실망감이 더 크게 오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소중한 추억은 그냥 마음속에 간직하고 나중에 조금씩 되뇌어 생각해 보는 게 그 추억을 곱게 그리고 오래 간직하는 방법이란다. 따라서 필리핀에 다시 올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물론 세부나 보라카이처럼 아름다운 필리핀의 바다나 밤하늘을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와도 좋지. 아름다운 자연은 언제나 아름다우니깐.

올해도 벌써 10월이 되었구나, 태호 글에도 잠깐 적었지만, 교수님은 지난 3월 초에 대만에 와 있어. 사실 여기 올 때는 3개월 후에는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국경이 닫히는 바람에 벌써 7개월을 여기에 머물고 있구나. 여기 와서 교수님도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단다. 다행히 여기에 서양인들이 많이 있어서 그 사람들과 종종 만나면서 교류도 하고, 또 킴스하우스 홈페이지도 다시 만들고 있단다. 만든 지 벌써 10년이 넘어서 말야. 새로 회원가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너무 버전이 오래되어서 고치기도 싶지 않구나.

어찌되었건 모든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잊혀진” 시간이 되고 말지. 경은이도 실감이 잘 안 나는 대학교생이 되었지만, 벌써 1년이 지나고 있잖니. 4장의 카드 중에 벌썬 1장을 쓰고 말았구나. 그러나 남은 3장의 카드를 정말 잘 사용해야 되겠지. 어차피 지금은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도 갈수도 없지.

교수님이 킴스하우스에 있을 때, 너희들에게 한국을 떠나서 살아볼 기회를 가지라고 말한 이유는, 사실 세상 어디에 사는 사람이고, 다른 나라에 가서 생활을 해보면 무엇인가 배우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그래. 물론 학생들은 한국보다는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좋구. 특히 영어권으로 가면 영어라는, 아주 큰 숙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이에 더해,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한국을 떠나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아마 그것은 경은이 부모님도 어느 정도는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계실거야. 아닐 수도 있고.

경은이도 어찌되었건 그런 기회가 향후 몇 년 안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 준비하면 너무 늦지.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것을 잡은 사람은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다”라는 말처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으로부터 최고의 유익을 얻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지. 그러니, 미리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내가 앞으로 무엇을 전공할지도 잘 생각을 해두길 바래.

사실 대학생이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는 학생을 말하거든. 교수님은 학부 때 어쩔 수 없이 화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컴퓨터 공학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그쪽 공부를 했었단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서 그 분야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 바로 대학생이니, 꼭 경은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기를 바란다.

이제는 경은이도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억지로 킴스하우스에 보낼 사람은 없단다. 경은이 스스로 환경을 찾아서 만들고 그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지. 그게 성인(adult)의 진정한 의미 아니겠니? 교수님은 경은이가 아주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순형이에게 교수님이 안부 전한다고 꼭 말해주거라. 남은 고등학생 기간 잘 준비해서 경은이처럼 좋은 학교 가라고도 전해주고. 그리고 부모님께도 교수님의 인사 전해주길 바래. 그래, 항상 건강하고 늘 밝게 살기를 바란다. 우리 경은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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